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1905년 11월 20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황성신문> 사설란에 올린 장지연의 논설 제목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아니 '박근혜 게이트'를 보면서 불현 듯 저 문구가 떠올랐다. 연일 매스컴을 타고있는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참담한 심경을 금할 길이 없어 목 놓아 울고 싶을 지경이다. 캐면 캘수록 불어나는 의혹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한편으론 무기력한 패배감 또한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한다는 것은 허상일 뿐인가. 공정한 룰을 만들고 공정하게 집행할 의무가 있는 최고 통치자가 그 룰을 어기고, 편법으로 룰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자 하는 세력에 동조하다니. '이게 나라냐'는 자조 섞인 일갈이 현재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국정역사교과서 편찬, 백남기 농민 사건 등을 보면서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역사적 발전이라는 물줄기를 따라 순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지만, 일견 납득이 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이 뽑은 대표자이기에 믿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옳지 못한 결정이었다고 나중에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은 성숙하게 될 것이고 결국 옳은 길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현실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참혹하다. 쏟아지는 의혹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제기에도 명확한 해명 없이 유언비어라는 식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은 급기야는 거짓말까지 하다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가 나오자 그제서야 1분 30초짜리 사과 영상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였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이 딱 그 정도였던 것일까.

 그렇지만 이는 그 정도의 사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무자격자가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방기하는 것을 넘어 협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를 규정한 헌법을 명백하게 위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더 이상 참지 않고 행동을 시작했다. 대학에선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고,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린 학생들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까지 시위에 참여할 만큼 평범한 국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 정권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정치적으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다음이다. 무릇 민주국가의 지도자는 각 분야에 대한 소신을 갖고 국민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 이미지만 있고, 자기 콘텐츠는 없는 사람이 다시 지도자가 된다면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외식을 할 때 각종 맛집을 꼼꼼하게 검색하면서도, 지도자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는 세태가 빚은 마지막 비극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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