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박성진기자]

①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고, 이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대에 올랐다. 박 대통령이 3차례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검찰의 수사 착수와 최씨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 제기로 파장은 더욱 커졌다. 국회는 12월9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23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②'위대한 촛불집회'… 시민혁명 이뤘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수면 위로 불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기치를 내걸고 전개된 촛불집회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끌어낸 결정적 요소였다. 10월29일 주최 측 추산 2만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직후인 12월3일에는 주최 측 추산 연인원 232만명이 전국에서 촛불을 들어 사상 최대 규모 집회로 기록됐다.
③김정은 핵도발과 개성공단 폐쇄… 집단 탈북 사태
북한 당·정·군의 정점에 선 김정은은 1월6일과 9월9일에 각각 단행한 두 차례 핵실험과 24차례의 각종 탄도 미사일 발사로 핵무기 실전 배치에 성큼 다가섰다. 국제사회는 두 건의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와 한·미·일 중심의 독자 제재로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이탈이 속출하면서 북한 엘리트층의 균열 조짐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도 일었다.
④4·13 총선 집권여당 참패…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
20대 총선은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를 출범시켰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 122석을 얻는 데 그쳐 과반의석을 잃은 것은 물론 원내 1당의 지위까지 더불어민주당(123석)에 내어줬다. 국민의당은 38석을 거머쥐어 확고한 3당의 지위를 굳혔다. 이후 새누리당은 가까스로 원내 1당의 지위를 회복했으나 국회운영의 주도권을 되찾는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⑤부정청탁금지법 전격 시행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9월28일 시행되면서 '김영란법' 시대가 열렸다. 이 법의 적용대상은 중앙행정기관, 법원, 국회, 공공기관, 학교, 언론사 등 4만여 개에 이른다. 이 법 시행으로 우리나라의 접대문화가 변화하게 됐으나 법 해석을 놓고 적지 않은 혼란도 발생했다. 또 농·축산업과 화훼업 등 일부 산업에는 피해도 발생했다.
⑥사드배치 논란과 중국 반발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를 위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다.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민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결국 한·미 군 당국은 경북 성주 내 롯데골프장으로 부지를 확정했다. 이런 가운데 사드가 자신들을 겨냥한 것으로 판단하는 중국의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⑦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국
올해 3월 서울에서 인간 최고 기사와 최신 인공지능(AI) 간 '세기의 대국'이 열렸다. 구글의 인공지능 전문 자회사 딥마인드는 '알파고'라는 바둑 인공지능을 개발해 인간 최고수로 인정받는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알파고는 상상을 뛰어넘는 기력을 과시하며 이세돌 9단을 몰아붙였고, 4대1 압승을 거뒀다.
⑧한진해운 청산과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국내 1위 원양선사였던 한진해운이 장기 업황 부진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8월 말 결국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는 글로벌 물류대란을 촉발한 데다 국내 해운업계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에 대한 회의론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조선업도 계속되는 수주 가뭄에 막대한 적자를 기록,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⑨전·현직 판검사의 민낯 드러난 법조비리 수사
원정 도박으로 징역형이 확정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가 변호사에게 낸 거액 수임료 논란을 계기로 법조계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사건과 연계된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와 김수천 부장판사가 연이어 구속됐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도 3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과 추징금 5억원을 선고받았다.

⑩경주 지진… 한반도 지진안전지대 아니다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한반도가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일깨웠다. 9월12일 오후 8시33분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7㎞ 지점에서 5.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경주 지진은 12월까지 540회 이상 여진이 날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지진이 일상화하자 대피물품을 챙겨놓거나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