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봄 가뭄' 산간마을을 가다]
모판 말라버리는 등 영농철 피해 속출
곳곳 방치된 논도… 소방서 급수 '총력'


[충청일보 송근섭기자] 낮 최고기온이 30도까지 치솟으며 한여름 무더위를 이어간 30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문동2리 산간마을에서 농민 임재일씨(62)는 누렇게 타들어가는 모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못자리에 놓여있는 모판은 군데군데 가뭄에 말라버린 모로 초록빛깔 대신 황갈색을 띠었다.
이미 바싹 말라버려 모내기가 불가능한 모도 적지 않았다.
임씨는 "재작년부터 가뭄이 심각하기는 했지만, 올해는 최악"이라며 "농업용수를 끌어올 저수지도 없어 모가 타들어 가는데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올해 최악의 가뭄이 한반도를 덮치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 마을도 모내기가 약 70%만 완료된 상태다.
산간마을의 특성상 물을 끌어다 쓸 곳도 없어 영농철 모내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낙 물이 부족하다보니 아직 손도 못 대고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된 논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마을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길 기도하는 것 뿐이다.
임씨는 "아무리 늦어도 하지(6월 21일)까지는 모내기를 마쳐야 하는데 아직 심지도 못한 모가 다 말라 죽어가고 있으니 큰일"이라며 "내일 비소식이 있긴 있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서 가장 크게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정상복씨(66) 부부는 약 1만3000여㎡(4000평)의 논에 심을 수 있는 '올벼(보통 벼보다 철 이르게 익는 벼)'를 모내기도 하지 못하고 전부 버렸다.
올벼는 보통 5월 초까지 다 심어야 하지만 올해 봄 가뭄이 지속된 탓에 모판에서 다 말라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 구석에 쌓여있는 모판을 볼 때마다 정씨 부부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간다.
농민들을 더 속상하게 하는 것은 무심한 하늘보다도 주변의 무관심이다.
한국농어촌공사나 지자체에서 농촌 현장 곳곳의 어려움을 파악하지 못해 가뭄 피해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 농민은 "가뭄이 심각하긴 해도 모내기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들 하는데, 지금 이런 상황을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조금 더 꼼꼼하게 현장을 돌아다녔으면 좋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농민들의 하소연이 이어지자 청주서부소방서는 이날 이 마을에 약 2만4000ℓ의 영농급수를 지원했다.
소방차량이 두 차례나 물을 싣고 와 말라죽기 직전의 모판에 물을 대자 그제야 농민들도 한시름을 놓았다.
임씨는 "붉은색을 띠기 시작한 모는 내일이면 다 말라죽어 심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소방서에서 물을 대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충북소방본부도 이 마을처럼 농업용수 확보가 어려운 산간마을 등의 영농급수 지원 요청이 잇따르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청주서부소방서 관계자는 "최근 급수 지원 요청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가뭄으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