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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제 개똥철학에 가까운 얘기였습니다. 그러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풍(豊)' 땅 출신입니다. 그곳 출신 장군 중에 노관(盧?)이란 사람이 있는데, 중국 동북부 지역인 연(燕)나라의 왕으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되자 흉노에게 달아나 숨어버립니다. 바로 이때 그의 수하였던 위만(衛滿)이 노관을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유민을 모아서 중국에 저항하다가 기자조선에 붙습니다. 기자조선의 준왕에게 중국과 조선 사이 완충지대(DMZ)에 머물면서 중국의 공격에 방패막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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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8.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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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흉노족이 무제의 역공에 패하여 쫓기게 됩니다. 이들 중에 선우와 좌현왕은 서쪽으로 갔는데, 우현왕이 바로 동쪽으로 몰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왕조를 접수하죠. 국가도 아니고 부족도 아닌 어정쩡한 제도와 형태로 살아가던 고조선 지역에 유목지대를 호령하는 통치체제를 적용하면서 스스로 왕을 잇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고조선의 마지막 왕 우거(右渠)입니다. 중국에게 시달리던 고조선 사람들은 다민족 연합국가에서 전투 경험이 많은 흉노족의 우현왕을 위만조선의 새 왕으로 추대했을 것입니다. 고조선의 왕 우거(右渠)는 성이 '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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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8.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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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펼쳐놓고 유라시아 대륙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리장성을 넘어서 초원지대로 쳐들어간 한나라 군대에 쫓겨서 흉노족이 갈 곳은 2방향입니다. 중심을 빼앗겼으니, 동쪽과 서쪽 둘 중의 한 군데로 달아날 수밖에 없죠. 한나라 무제(武帝)의 집요한 공격으로 이들은 둘로 갈라져 달아납니다.서쪽으로 달아나자면 지금의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처럼 천산산맥 너머로 쫓겨납니다. 거기 동유럽에는 원래 사람들이 살았겠죠. 그들은 다시 흉노족에게 쫓겨 서쪽으로 더 갑니다. 어디일까요? 북유럽입니다. 일파만파로 흉노족들이 끝없이 밀려들자 동유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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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8.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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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정했습니다. 이 말은 바로 앞의 왕조인 '대한제국'에서 온 말입니다. '제'를 '민'으로 바꾼 것이죠. 그런데 그 앞의 왕조는 '조선'이었습니다. 대대로 조선이었는데, 왜 하필 '한'으로 바꾸었을까요?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살던 옛 민족들은 대체로 2가지로 불렸습니다. '조선'과 '한'. '한'은 한반도 안의 '삼한'입니다. 이미 역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죠.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사람들에게 '조선'과 '3한'은 같은 말이었던 셈입니다. 3한은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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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7.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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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비교 언어학 얘기를 꺼낸 김에, 까짓것 한 발 더 나가보겠습니다. 청주 지역의 지명 중에 우리의 상식 수준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말들이 있습니다. '것대산, 팔결' 같은 것이 그런 것이죠. 이게 우리말이 아니라 다른 말에서 온 것이기에 알쏭달쏭한 겁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의 지배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려 때는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고,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의 지배도 받다시피 했죠. 그런 자취가 우리말 곳곳에 함정처럼 숨어서 우리를 골탕 먹입니다. 화냥년, 한라산, 마누라…. 그러니 언어학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비교 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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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7.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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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原一云臂城一云子谷(『삼국사기』 지리지4)淸州牧本百濟上黨縣置西原小京(『고려사』 지리지1)本百濟上黨縣[一云娘臂城一云娘子谷]城新羅神文王五年初置西原小京(『동국여지승람』Ⅴ15 청주목) 청주에 관한 옛 기록을 모조리 찾아서 시대별로 정리했습니다. 한문이 나오니까 덜컥 겁부터 나시죠?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원을 제대로 파자면 단순히 낱말 몇 개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상당산성=낭비성'이므로, 같은 대상을 적은 것이니 같은 뜻이라고 봐야 합니다. 上黨=娘臂. 뭘까요? 청주는 삼국의 한복판이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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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7.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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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적성면에 한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 사는 녀석에게 "너 어디 사니?"하고 물으면 이렇게 답합니다. "대가리요."아이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걔는 학교에 갈 때마다 이런 놀림을 받으며 삽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원래는 대가리가 아니라 '한가리'였답니다. 한가리가 일제강점기 때 면서기의 펜 끝에서 대가리로 변한 것입니다. '한가리'와 '대가리'는 일정한 번역 원칙이 있습니다. '한'은 우리말에서 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대(大)'라고 옮긴 것이죠. 마치 '한밭'을 '대전(大田)'으로 옮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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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7.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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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을 찾는 일은 민간어원설과 싸우는 피곤한 일입니다. 이 피곤함이 또 한 차례 청주에서 해일처럼 밀려듭니다. 옛날부터 청주가 배를 닮아서 '주성(舟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이 이야기는 시내 한복판의 절 유적을 포장하려는 설화입니다. 설화는 설화로 받아들여야지 그것을 실제의 현실에 끌어다 붙이려고 하면 큰탈 납니다. 운등사 주지승 혜원이 율양역 객방에서 하루를 묵는데,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 배가 풍랑에 떠내려가지 않게 돛대를 세우라고 했다는 것이고, 용두사 주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지나던 초립동이 똑같은 말을 해서, 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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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6.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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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산의 어원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없어서 제가 또 쓸데없이 입을 열고야 맙니다. '우암산'은 최근에 쓴 말이고, 1960년대에 청주를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와우산(臥牛山)'이라고 기억합니다. 소가 누운 형상이라는 거죠. 실제로 남쪽인 무심천 상류 쪽에서 바라보면 상당산성에서 뻗어내린 산의 모습이 마치 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풍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형상으로 도시의 성격을 규정지으려고 한 의도가 보이는 말입니다. 풍수는 고려 시대 도선국사가 도입하였으니, 이런 식의 설명은 심심풀이 정도로 붙은 이름이라고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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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6.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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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은 정남에서 정북으로 마치 자를 대고 그은 듯이 청주 시내를 가르고 흐릅니다. 이토록 방향이 또렷한 내도 드뭅니다. 그러니 이런 내에 방향과 관련 있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니, 이름도 그와 관련이 있겠지요. 바람을 뜻하는 말 중에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파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맣+바람'의 짜임입니다. '맣'는 '맛, 맞, 맏'으로 받침이 변합니다. '맞은편, 맞다, 마주, 마중' 같은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맣'는 남쪽의 뜻입니다. 주로 여름에 부는 계절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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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6.1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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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옛 지도를 보면 청주 북쪽을 흐르는 물에 오근진(梧根津)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앞서 알아본 '오근장'과 '오창'의 연관어임을 알 수 있죠. '오창'은 '오근창'의 준말입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거기서 청주로 나오려면 큰 냇물을 건너야 하니, 뱃사공이 사람을 실어나르는 곳이 있어야 하겠고, 배 타는 곳이 '나루'이니, 그대로 '머귓벌나루, 먹벌나루'가 된 것입니다. 이곳에는 평상시에 다리가 있었는데, 냇물이 불면 배를 타고 건넌다고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섶다리를 설치해서 사람들이 오가게 했겠죠. 청주시에서 돈 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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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6.0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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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근장’은 한자로 ‘梧根場’입니다. 오근장역이 있어서 청주역, 증평역, 충주역, 제천역 같은 이름과 견주면 정말 한눈에 다르다는 느낌이 들죠. ‘장’은 장이 서던 곳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이라는 뜻이죠. 문제는 ‘오근’입니다. 그대로 풀어보면 ‘오동나무 뿌리’라는 뜻인데, 이게 뭘까요?먼저, 오근의 ‘根’은 뿌리인데, 옛말은 ‘불휘’(『용비어천가』)였습니다. 과연 나무뿌리를 가리킨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벌판의 ‘벌’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오역이죠. 왜 ‘벌’이냐고요. 오근장역에 서면 건너편 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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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5.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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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가산 남쪽 기슭(목련공원)에서 발원하여 청주 시내로 흘러가는 냇물이 ‘월운천’라고 하는데, 동네 이름인 월오리(月午里)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月의 뜻은 ‘달’인데, 우리말의 ‘달’은 언덕이나 들판을 말합니다. 월운천의 운(雲) 자는 이 개울을 미화시키느라고 붙인 것이거나, 앞서 본 영운천처럼 ‘가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 것입니다. 월운천은 ‘달내’가 되고, 월오리는 ‘다라실, 다리실’이 됩니다. 실제로 도로명 주소에 ‘다리실’이라는 이름이 쓰였습니다.‘실’은 ‘실개천, 실골목’ 같은 말에서 보듯이 가느다란 골짜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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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5.1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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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사관학교 입구 옆 쌍수리에는 체육공원이 있습니다. 서울에 있던 공사가 내려오면서 원래 있던 마을이 통째로 이사 갔고, 지금은 체육공원이 되었습니다. 공사 이전으로 철거되기 전의 그 동네 이름이 ‘역촌’이었습니다. 공원 한복판에 커다란 둥구나무가 몇 그루 서서 그곳이 마을이 있던 터였음을 보여줍니다. 큰길의 효촌리에는 ‘관터’라는 지명이 있으니, 이 둘을 보면 옛날에 조선 시대에는 이곳이 역마를 관리하는 곳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청주에서 공군사관학교 앞을 지나 조금만 나가면 삼거리입니다. ‘거리’는 한자로 ‘距離’라고 쓰는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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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5.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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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해 말하다 보면,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 가끔 눈에 띕니다. 지명에는 천 년 내력이 있는 법인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바꿔버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바꾸었다는 기록조차도 남기지 않습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지나가죠. 20~30년쯤 세월이 지나고 보면 마치 그 지명이 100년 전부터 있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불립니다. 산의 경우 요즘은 꼭대기에다가 커다란 돌덩어리를 세우고 이름을 새겨넣어 부정확한 고증이더라도 정과 끌로 그것을 ‘확정’짓는 일을 실천합니다.공군사관학교가 1985년에 서울에서 느닷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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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4.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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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내(金川)와 ‘작은대머리’ 사이에도 개울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이 영운천입니다. 穎雲川. 금천의 경우는 우리말과 또렷한 연관이 있어서 고민이 없는데, 이곳의 냇물에 붙은 이름은 어렵기만 합니다. 동사무소에서 소개한 글에서도 이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갈팡질팡입니다. 그곳의 동네 이름이 영운동(永雲洞)인데, 소리만 같지 한자가 달라서 더욱 혼란을 부채질합니다. 영운동의 ‘영운’에서 한자만 바꾸었다고 본다면, 그 의도를 짐작 못 할 것은 아닙니다.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들이 사회를 이끄는 중추 세력으로 성장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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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4.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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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대표하는 가문은 청주 한씨입니다. 그런데 청주 한씨를 ‘대머리 한씨’라고 부릅니다. 한씨 시조가 살던 곳이 대머리라는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대머리’라는 이름은 그곳에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무심천이 가로지르는 너른 들(분평, 미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대머리입니다. 지금은 무농정(務農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바로 옆에 용지(龍池)와 한씨 고택이 있습니다.이 대머리는 대가리가 까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머리’는 ‘산마루’에서 보이는 ‘마루’입니다. 높다는 뜻이죠. 그 높이는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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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4.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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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온 김에 우리 주변의 동네 이름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가겠습니다. 용암동 옆은 금천동입니다. 금천(金川)은 ‘쇳내’를 한자로 옮긴 것일 텐데, 이곳이 금이나 철광석이 나는 곳이 아니라면, 이 때의 ‘쇠’는 광물과는 상관이 없는 말일 겁니다. 이것은 방향을 나타내는 말로, 일 겁니다. 이것은 동쪽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금천동이 왜 동쪽일까요? 시내 중심인 육거리 시장 쪽에서 보면 동쪽에서 냇물이 하나 흘러내려옵니다. 그게 금천이죠. 그 금천은 와우산(우암산의 원래 이름) 사이에서 발원되어 육거리에서 무심천으로 합류하죠.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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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3.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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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 장군의 전설이 서린 용지는, ‘중흥에스클레스’라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 길 건너편에 있습니다. 저는 날마다 그 앞을 지나며 가슴이 아픕니다. 용지 옆에는 무농정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대머리 한 씨를 기억하는 집이 있는데, 지금 용지 둘레에는 많은 집과 상가가 들어서서, 한때 잘 가꾸어졌을 용 연못은 방치된 채 비석만 즐비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곳이 대머리 한 씨의 본향이니, 종중회에서 이곳의 땅을 모조리 사들여서 무농정과 용지, 한 씨 고택을 잇는 범위를 성역화를 했으면 합니다. 행정명 방정동과 방서동이 바로 한 씨 고택의 우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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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3.2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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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줄기와 물줄기는 짝을 지어 흘러갑니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하는 법. 둘이 늘 함께 가기에 지리를 파악하는 데는 이 둘의 관계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런 개념을 잘 반영한 것이, 조선 후기의 지리서 『산경표』입니다.이런 관계는 반드시 이름에도 그 자취를 남깁니다. 옛사람들이 산등성마루에 올라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고 떠올린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너른 벌판을 지그재그로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강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보입니다. 흘러가는 물은 반짝이며 꿈틀거리죠. 그대로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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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22.03.16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