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통의 정론지… 충청권 희망의 시대 이끌어주길"
사창동 사옥 시절 1980년대 대학 학보사 조교 인연
갖은 시련 극복 후 어떤 지역지보다 안정화 이뤄내
종이신문 위기라지만 역사·전통 역할 여전히 막중
전문가 기자 키워 멀티미디어 시대 수준 높일 필요
올 어젠다 '위기를 기회로' 처럼 지역발전 견인 기대
'역사의 증인' 충청일보가 올해로 창간 75주년을 맞았다. 한 때 부침도 있었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일곱 번 하고도 절반이나 보내면서 지역 사회와 희로애락을 나눠왔다.
본보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충청일보 독자권익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의보 전 충청대학교 교수를 만나 독자로서 전하는 충청일보 탄생 75주년 축하 인사와 앞으로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 등을 들어봤다.
심 전 교수가 충청일보와 인연을 맺은 때는 지난 1980년대로 거슬러간다.
충청일보의 청주시 사창동 사옥 시절 청주교육대학교에서 학보사 조교를 맡으면서다.
"문선공들이 글자를 보고 윤전기를 돌리던 시절이었죠. 학보사를 담당하는 조교로 임명되면서 약 6년 정도 충청일보에 들락거렸습니다. 학보에 실을 원고를 받고 학생 편집장과 함께 기획을 했어요."
당시 기억 나는 일화가 있냐고 묻자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부장, 논설 등으로 일하다 1989년 충청일보를 떠난 김춘길 전 논설주간을 언급했다.
"교육대가 자체적으로 학교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를 신문에 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는 내용이었어요. 그렇지만 지역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에 기사를 쓰셨기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당시 시내의 샘물다방에서 김 대기자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바람직한 학교 개선 방안 등을 청취했죠. 그 때 격려도 많이 해주셨어요."
충청일보가 지역의 일간지 중 나은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꺼낸 키워드는 '안정'이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듯 여러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엔 정상화되지 않았습니까. 현재는 경영 상 쌓여있던 부채도 탕감 중이라 알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떤 신문들보다 정착되면서 역사 속의 정론지로서 부끄러움 없이 발전하는 중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정론직필의 75년 역사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요."
하지만 IT의 발달은 역으로 종이 신문의 쇠퇴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전국 신문이 아닌 지방지의 경우 이는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종이 신문 구독자로서 심 전 교수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현재 언론사가 너무 많고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종이 신문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운영의 문제도 그렇고 그에 수반되는 사회 문제도 있겠죠. 그러나 모든 신문의 기반은 역시 종이 신문인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터넷 서핑처럼 보고 지나가면 그만인 게 아니라 기록으로서 두고 두고 읽힐 것으로 생각해요.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초대 국무장관과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자유를 제약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했던 연방주의자들에게 반기(反旗)를 든 공화주의자들을 규합해 18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언론의 자유가 중요함을 일찍이 깨달은 그가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명한 구절을 남겼어요.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지금 난립하는 인터넷 매체들과 비교할 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종이 신문의 역할은 지금도 막중하다고 봅니다. 신문이야 말로 방송보다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의 모든 기록이 없어져도 신문은 남거든요. 교육대의 역사를 정리할 때도 학교 자료보다 신문을 더 참고했던 기억이 납니다."
종이 신문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그는 전문성을 강조했다.
"전문가 수준의 전문 기자를 키워서 멀티미디어 시대에 맞는, 수준 높은 기사를 쓰는 신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역사의 기록으로서 신문은 더욱 중요하고요. 중국의 사상가 공자도 역사 기록은 사실에 입각해서 가감 없이 기록해야 한다고 했어요. 바르게 쓰지 않으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위사'죠. 중국의 사성(史聖) 사마천(司馬遷)은 한 무제의 눈 밖에 났다가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宮刑)을 감수하면서까지, 목숨만이라도 부지해 역사서를 쓰라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동양 역사서의 근간이자 인간학의 보고(寶庫)인 사기(史記)를 쓰지 않았습니까. 중국 고대사의 명작이죠. 역사의 흥망성쇠를 사실에 의거해 기록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얘기하면서 심 전 교수는 '함흥차사'와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 평가되는 세종대왕도 언급했다.
"태조 이성계가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에 분노해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가버렸죠.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인정 받기 위해 아버지를 도성으로 모셔오려고 함흥으로 여러 번 사신을 보냈으나 이성계가 그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둬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함흥차사란 말이 생겼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실록에 보면 이방원의 아들인 세종이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사관들이 어떻게 해놓았나 궁금해서 사초(史草·실록이나 일기 등 역사 편찬의 첫 번째 자료로, 사관이 매일 기록한 원고)를 가져오라고 해요. 하지만 황희 정승 등 신료들이 '아무리 열람만 한다고 해도 그걸 보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개입이 생길 수 있다'며 그걸 보지 못 하게 막았어요. 역사 기록의 중대성을 보여주는 일화이죠. 연산군과 비교하면 알 수 있어요.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다가 이를 연산군이 알게 되면서 이미 죽은 김종직을 다시 죽인 무오사화가 일어났죠."
충청일보 창간 75주년을 축하하며 심 전 교수는 덕담과 당부도 잊지 않았다.
"충북도 폐도설을 충청일보가 막아낸 것처럼 75년 역사의 바탕 위에 올해의 슬로건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아 충청도 발전을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충청일보가 더 발전하길 독자들이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공정과 나눔, 지역 발전의 기능을 해주셔야 해요. 공익 정론지로서 빠른 전달도 중요하지만 누구보다 정확하게 소식을 알리며 이규택 회장님을 비롯한 충청일보 임직원 여러분이 걷는 '정론으로의 길'을 응원합니다." /신홍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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