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점검 때 지적사항만 무려 29개 항목 66곳
"제때 시정 했다면 참사 막을 수도 있었을 것"

[제천=충청일보 박장규기자] 29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가 불량한 소방시설과 안전관리 부실의 종합 세트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다중이용시설이지만 곳곳에 부실의 뇌관을 숨긴 채 언제든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건물로 조사됐다.

화재 20여 일 전에 실시된 소방안전점검 때 지적사항만 무려 29개 항목 66곳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층 출입구와 지하실 스프링클러 고장, 화재 감지기 이상, 완강기 부족, 방화셔터 작동 불량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꼽혔다. 소방점검 후 제때 설비를 보완했더라면 이번처럼 큰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란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셀프 점검… 부실 제대로 안 짚어

이 스포츠센터는 지난 8월 현 건물주에게 매각되기 전까지 전 건물주 아들이 소방안전관리를 맡아 '셀프 점검' 했다.

지난해 8월 제천소방서에 제출된 이 건물 소방안전보고서에는 소화기 충전 필요, 비상조명등 교체 등 경미한 사안만 지적돼 있다. 완강기와 경보시설, 스프링클러 등 주요 소방설비는 대부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표시됐다.

지난 8월 경매로 이 건물을 인수한 A씨는 소방안전점검을 외부 업체에 맡겼고, 이 업체는 지난달 30일 소방점검 때 중대 하자인 보조펌프 고장, 스프링클러 고장, 방화셔터 작동 불량 등을 지적했다. 전 건물주가 철저하게 소방점검을 해 문제점을 제때 시정했다면 이번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프링클러 오작동, 텅 빈 소화기

해당 스포츠센터는 스프링클러 설치의무가 있는 특정소방대상물로, 건물 내에는 모두 356개의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화재가 발생한 지난 21일 최초 발화 지점인 1층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배관에서 물이 새자 일부러 알람밸브를 잠가 놓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은 건물주를 체포했고, 소방시설 점검업체 압수수색에 나섰다.

내구연한 10년을 넘긴 소화기는 소방산업기술원의 성능 확인을 거쳐 1회에 한해 3년 더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스포츠센터는 내구연한이 지난 소화기를 속이 텅 빈 상태로 방치했다.

◇소방점검 때 여탕은 패스… 비상구 막혀 최대 피해

스포츠센터 2층 여탕에서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목욕바구니가 놓인 철제 선반으로 막혀 있었다.

소방안전점검업체는 지난달 30일 이 센터를 점검했으나 직원이 모두 남자라 2층 여성 사우나에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내부를 점검하지 않고 직원들 얘기를 듣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소방점검이 제대로 이뤄져 비상구의 불법 구조물 설치가 확인됐고, 시정이 뒤따랐다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따른다.

◇6층 방화셔터 작동 불량

방화셔터는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는 설비로, 연면적 1000㎡가 넘는 건축물이 설치 대상이다.

연면적 3813.5㎡인 해당 스포츠센터에도 방화셔터가 설치돼 있지만 6층 방화셔터는 작동 불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동방화셔터 및 방화문 기준'에 따르면 방화셔터는 화재 시 연기감지기에 의한 일부 폐쇄와 열감지기에 의한 완전 폐쇄가 가능해야 한다. 불이 나면 연기와 유독가스가 먼저 번지기 때문에 대피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 열려 있다가 불이 확산할 경우 완전히 닫혀야 한다.

그러나 6층 방화셔터는 연기감지기만 작동해도 완전히 폐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층 방화셔터도 작동 불량이었다.

29명의 희생자 중 9명이 6∼8층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방화셔터가 완전히 닫히면서 아래층으로 대피하지 못한 데 따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7대 있어야 할 완강기 고작 4대

화재 시 몸에 밧줄을 매 땅으로 천천히 내려갈 수 있는 완강기는 소방시설법 상 지상 3층부터 모든 층에 1개식 설치돼야 한다. 지난 21일 불이 난 제천 스포츠센터는 9층이지만 완강기는 3층과 5층, 8층 등 3곳에만 설치돼 있다. 완강기가 없는 층에는 양방향 피난계단이 있어야 했지만 이 건물 일부 층에는 한쪽으로만 계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증축…유독가스 배출 방해

해당 스포츠센터는 무허가 증축이 이뤄지고 용도까지 변경한 탓에 연기와 유독가스 배출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동감식팀은 불이 난 뒤 아크릴로 덮인 81.3㎡의 8층 테라스와 아크릴ㆍ천막 재질의 지붕이 덮인 53.2㎡의 9층 테라스가 불법 증축된 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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